인생 최악의 날

 

권증현목회1 강단13

은혜의 강, 생수의 강으로 ……

 

 

 

 

눈물을 흘리고 멈춰라

하루아침에 잔인하고 흉악한 자들이 덮치서 경제적 파탄이나고 무시무시한 일들이 오늘 나에게 직면해 와서 자신과 가족들에게  덮친다면 별다는 방법외에는 도리가 없다면 뜨거운 눈물을 흘릴 것이다.

 

눈물을 흘리는 것 말고는 그 두려움과 분노와 고통을 배출할 방법 외에는 다른 방법이 또 있을까?

 

다윗도 시글락에서 잠시 자신의 군대와 함께 외출후 돌아와 보니 이웃 아멜렉으로부터 공격을 받아 자신이 거주하는 동네와 집 가축 가족 살림도구 등 모든 것이 불타서 잿더미가 되었고 부녀자들과 아이들 가축은 모두 사로잡혀 포로로 잡혀서 죽거나 노예가 되어 폐허가 된 마을을 보고 600명의 군사들과 함께 뜨거운 눈물을 흘린 것이다

 

그들은 울 힘이 없을 때까지 울었고 건강한 남자들이 기력이 쇠할때까지 울었고 지쳐서 울었고 더 울 수 없을 때까지 울고 울었다.

 

오늘 당신은 분명 인생 최악의 날 심각한 문제가 부딪쳐서 심각한 문제가 맞닥뜨렸다면 어떻하겠는가? 가장 우선하는 것은 우는 것이다 신앙생활이라고 감정을 배제하고 신앙이 강건하고 굳건하다고 해서 감정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다.

 

신앙생활에서도 다른 사람과 같이 감정을 받지 않는 것이 아니다. 감정을 느끼고 감정을 표현하되 감정에 따라 최종 결정을 내리지 않을 뿐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감정을 정서적으로 주셨기 때문에 감정의 삶의 즐거움 기쁨을 만끽하고 슬픔과 기쁨의 개성이 없는 사람이 아니다.

 

본인의 감성이 충실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 할 수 없다 위대한 다윗은 기쁘고 즐거울 때 찬양과 소고와 춤고 노래로 바지가 흘러내려도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지 아니하고 경배와 찬양을 드렸다

 

우리도 하나님께 감정을 영적 실체로 가득 채워서 찬양과 경배와 소고와 비파로 영적 실체가 가득한 예배가 필요하다. 사순절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서 고통당하심으로 우리의 고귀한 구원을 묵상했다면서 아무른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면 반드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를 창조하시고 구원의 손길을 느낀다면서 무엇을 느낌의 감정이 없다면 무엇인가 인성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삶에 문제가 있을 때 눈물을 흘리는 것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눈물을 흘린다고 해서 믿음에 위배되는 것은 아니다 위대한 믿음의 사도들도 눈물을 흘렸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가 죽었을 때 눈물을 흘렸다. 야곱은 라헬을 만났을 때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요셉은 아버지와 형제들 재회의 눈물을 흘렸다. 느혜미야는 예루살렘의 참흑한 모습에 눈물을 흘렸다. 욥은 시험을 당할 때 눈물을 흘렸다. 예레미아 선지자는 이스라엘 죄악을 슬프하며 눈물을 흘렸다. 베드로는 자신의 잘못을 통한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 바울은 시험을 당할 때 눈물을 흘렸다. 요한은 천국 환상을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 에수님께서도 많은 눈물을 흘리셨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성육신의 모습으로 마구간에서 태어나서 추워서 울었을 것이고 배고파서 우셨을 것이고 고난과 고통을 통한 슬픔의 눈물을 많이 흘리셨다 탄생과 죽음 시험과 유혹 슬픔과 고통 여기에서 예수님도 성육신의 사람으로 많은 눈물을 흘리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본회퍼는 고통받는 자들을  하나님만이 도우실 수 있다. 선지자들과 예수님께서 눈물을 많이 흘리신 까닭은 하나님께서 눈물을 흘리셨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신 하나님만이 우리의 눈물에 동참하고 하신 것이다.

 

기쁨의 날이 오리로다

하나님의 눈물은 연민의 눈물이 아니다. 하나님의 눈물은 우리를 지배하는 슬픔에서 해방의 눈물이다. 예수님은 슬픔가운데 우리에게 오신 것이 아니다. 슬프하는 우리에게 기쁨으로 인도하실 부활의 새 아침으로 해방의 기쁨으로 오신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고난에 동참하여 마침내 말로 다 할 수 없는 해방의 기쁨으로 영광으로 오신 것이다.

 

2천년전 첫 번째 강림은 그리스도의 몸을 입고 강림하시면서 세상의 아들로 태어나 모든 아기처럼 울면서 태어났다. 두 번째 강림은 그리스도의 몸을 입고 다시 한 번 우리를 찾아 오셨서 우리의 눈물을 말끔히 닦아 주실 것이다. 성경은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다.”고 부정할 수 없다. 슬플 때는 개인적인 극심한 고통과 고난의 시간에 울 수 있다는 것이 아름다운 믿음인 것이다.

 

눈물을 흘릴 때가 있었며 그쳐야할 때가 있다.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눈물 흘리는 저녁이 있다면 믿음의 새벽도 있다. 동틀무렵에는 눈물을 그치고 주님 안에서 기뻐할 때가 있다. 계속 울기만 한다면 비탄에 빠질 수도 있다. 슬픔에 집착하면 믿음을 파괴하고 연민에 빠져 연민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다.

 

자기 연민에 빠지게 된다면 고통에서 벗어나 영광의 자리에 이르지 못한다. 연민은 불신에서 비롯된 잘못된 눈물이다. 이러한 눈물을 하나님의 진노를 부른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노예 생활에서 즐겨 먹던 육류와 각종 맛난 음식을 먹던 생활에 욕망에 가득 차 불평과 불만을 표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광야에서 만나를 초자연적인 음식에 불만으로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게 된다.

 

불신이라는 죄 두려움의 자기 연민에 빠진 눈물은 하나님의 진노를 불렸다. 끝없는 자기 연민 자신을 파괴시키고 가정을 무너뜨리고 비참한 환경으로 빠질 지경에서 더 이상 안전한 곳으로 옮길 수 없는 자기 연민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 인생 최악의 날을 맞았다 하더라도 마음껏 웃을 수 있는 날이 있을 것이다.

 

이제 스스로에게 이만큼 울었으면 됐어 말하고 더는 울지 않기로 마음먹어야 한다. 자기 연민은 자신과 가정과 단체에 치명적인 것으로 알고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연민은 믿음을 무너뜨리고 스스로 감옥에 고립시키는 것으로 빠져 나올 수 없게 만든다 연민은 결코 삶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라.

다윗은 르바임 거인의 골짜기에서 엄청난 곤경과 고통에서 우는 나무 아래 앉아 있었다. 시련과 고통의 빠져을 때 하는 행동이다. 우는 나무 아래에서 다윗에게 거인 골짜기에서 불레셋의 골리앗을 물리칠 수 있었든 지략을 주셨든 것처럼 하나님의 영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 “뽕나무 꼭대기에서 걸음 걷는 소리가 들리거든 공격하라다윗은 순종한다. “여호와가 너보다 앞서가서 불레셋 군대를 치리라는 성령의 음성을 듣고 약속의 성취를 믿는다.

 

얼마나  멋진가 뽕나무 소리보다 더 크게 들려오는 성령의 음성 울음소리보다 능가한 진군의 소리를 들으라고 전쟁터로 나아가는 천군천사의 소리 본인의 울음소리 외에 아무 것도 들리지 않을 때 영의 소리 성령의 음성을 듣는가.

 

눈물을 거두고 우는 나무아래에서 일어 설 수 있다면 천군천사와 함께 진군 할 수 있도록 눈물을 떨치고 승리의 개가를 부르는 백성으로 방법을 옮겨 줄 것이다.

 

슬픔에 매몰되어 자포 자기 하는 사람을 많이 보았다.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가 우는 나무아래에서 괴로워하는 광경을 너무 깊은 슬픔은 나를 눈물의 골짜기로 눌러앉아 잇기로 결정해 버린다. 너무 오래 슬픔에 앉아 있었면 우울한 나에게 악한 영을 유인하는 어둡고 침울한 세계로 우리를 빠지게 한다.

 

우리에게 기쁨과 큰 만족을 안겨 줄 잠재력이 있는 하나님의 거룩한 운명이 곧 다가 올 것이다. 슬픔이 점령하지 못하게 슬픔의 자리에서 머물지 말고 자리에서 털고 일어나 더 나은 내일로 이끌어 줄 믿음의 발걸음을 내디더라.

 

성문 밖 나병환자들이 나온다 그들은 불치병으로 많은 어려운 시간을 보낸다. 자신들 스스로 슬픔에 빠져 누구의 도움으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자신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왜 여기 앉아서 죽기를 기다리고 있지이들 중에 한 사람의  철학자가 있었다. 어찌할 바를 모르는 이들에게 뚱딴지 같은 질문을 던진다. “왜 하필 나야내가 무엇이 잘 못 해서. 얼마나 더 견디어 내야 해성문 밖 나병 환자들은 이러한 질문을 하지 않았다.

 

이들은 긍정적 생각을 가지고 우울을 떨쳐내고 자신들이 앉은 자리를 거더 내 던지고 비참한 지경에서 일어나 새로운 희망을 품고 내일에 희망을 품고 예수님께 소문듣고 일어나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어둠의 소굴 죽음의 소굴에서 나아왔다.

 

인생의 최악의 날 눈물을 흘리고 있을 것인가.  당연하다고 하면서 이해할 만한 것이니 이해를 구하고 주저 앉아 있을 것인가.  억압된 고통 감정의 깊은 수렁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괜찮아 하고 있을 것인가.

 

눈물로 밤을 지새운다 할지라도 새벽에 성령의 음성에 울음을 멈추고 믿어야 할 때가 되면 믿음의 새벽이 찾아온다. 비극을 승리로 바꾸는 눈물은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고 일어나는 사람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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